"비극은 자연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문학의 전통을 봤을 때, 윌리엄 포크너나 애니 프루, 메릴린 로빈슨, 코맥 매카시처럼 말이다. 인물의 내면을 외부의 풍경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가 숲이나 물가를 묘사할 때 주인공의 마음 상태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고 사실 예술조차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 원래 그러한 방식일 뿐이니까. 자연에는 그 어떤 가치판단이나 호오, 선악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숲이나 강을 완전히 중립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끼어들어 원래 거기 없던 것을 읽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환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당연하게도 주인공의 마음이 드러나게 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픽션이란 없다. 무엇이든, 우리 무의식의 구조물이다."_데이비드 밴, 2014, 「씨네21」
AI 시대에 놓인 한 실직 가장의 이야기다. 이성민과 염혜란이 부부로 등장하는데, 영화에서 가장 재밌고 또 가장 웃긴 구간이기도 하다. 생활의 결이 살아 있는 부부 호흡,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나오는 자조 섞인 농담들. 웃음은 분명히 발생하는데, 그 웃음의 근원은 행복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래서 웃기지만 동시에 서늘하다. 코미디의 밀도는 구범모·이아라 부부와 유만수(이병헌)가 얽히는 장면들에 집중되어 있다. 상황은 계속 우스꽝스럽게 굴러가는데, 그 우스움이 인물들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박찬욱 감독이 상업영화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코미디를 배치했음에도, 영화의 뒷맛은 전혀 상업적이지 않다. 씁쓸하다 못해 쓰디쓰다. 상업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정서의 결은 거의 아트영화에 가깝다. 웃으며 현실을 통과하게 만들지만, 극장을 나오는 순간 웃음은 바로 증발한다. 유만수는 수십 년 다니던 펄프 회사에서 해고된다. 3개월 안에 재취업을 해야 한다. 그는 알바를 전전하며 면접을 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집을 팔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같은 업종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다른 일은 선택지가 아니라 임시 대피소에 가깝다. 그 마음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재취업 경쟁자들 역시 전부 같은 처지다. (반장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실직 상태. 모두 같은 업종 희망. 모두 같은 자리 노림. 다른 직종으로 가라는 말은 공허하게 울린다. 몸의 리듬과 사고의 결이 이미 그 노동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직업을 바꾸지 못한다. 생계 이전에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경쟁은 잔혹하다. 실직자들끼리 서로를 밀어내야 하는 구조. 만수는 결국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재취업에 성공하고 집도 지키고 가정도 지킨다. 그런데 회사에 돌아가 마주하는 것은 동료들이 아니다. 자동화 설비, 기계 라인, 인간의 손을 대체한 시스템들이다. 재취업은 성공했지만, 인간 노동은 이미 퇴장 절차에 들어가 있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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