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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NE ONE

 전쟁 전에 지어진 고집스럽고 낡은 건물들 위에 도사린 급수탑, 그보다 더 높이 솟아 있는 육중한 중앙 환기장치 같은 것들. 힘겹게 솟아 있는 고층 건물들 위에 똬리를 틀고 웅크린 환기장치들은 밖으로 밀려 나온 창자처럼 번들거렸다. 방수포로 마감한 임대주택의 지붕들. 가끔 계절에 맞지 않는 비치 의자가 반으로 접혀서 자갈밭에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저 아래 거리에서 돌풍에 휘말려 올라온 것 같았다. 저 의자의 주인이 누굴까? 그 사람은 도시의 구석진 곳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계단 입구 위의 슬로건들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형광 페인트로 쓴 위협적인 말과 자기들끼리 통하는 언어로 된 선언. 다시 말해서 무능한 혁명가들의 흔적이었다. 창문마다 열려 있거나 반쯤 열렸거나 닫혀 있는 블라인드와 커튼이 펀치카드의 구멍 같았다. 아무 표시도 없는 어딘가의 쓰레기 매립지에 죽어서 묻혀 있는 컴퓨터 본체만이 그 암호를 해독할 수 있을 것이다. 창문에는 이 도시 시민들의 모습이 조각조각 전시되어 있었다. 불합리한 추론을 좋아하는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같았다. 도시 골퍼가 가느다란 줄무늬 옷을 입은 양다리를 쫙 벌려서 여과기 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청록색 재킷을 입은 여자의 몸통 절반이 사다리꼴 창문을 통해 언뜻 보였다. 티타늄 책상 위에서는 누군가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욕실의 올록볼록한 유리 뒤편에서 그림자 하나가 움직이고,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수증기가 슬금슬금 흘러나왔다. 그는 옛날 모습, 옛날 스카이라인을 떠올렸다. 맨해튼섬 여기저기에서 건물들이 서로 충돌했다. 수직으로 야심차게 뻗은 고층 건물들은 작은 건물에 굴욕을 안기고, 서로의 그림자 속에서 샐쭉해졌다. 필연성이 임기를 모르는 시장처럼 군림했다. 한때 유명했던 건축가들이 탄생시켜 멋들어진 이름을 지어준 어제의 승리자들은 내연기관이 내뿜는 검댕과 발전된 건축 기술에 모욕당했다. 세월이 우아한 석조 조각품을 끌처럼 두드려댄 탓에, 그 세공품들이 가루와 조각으로 부서져 소용돌이처럼 빙빙 휘돌거나 길로 떨어져 내렸다. 건물 내부도 유용성에 대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이론에 따라 난도질되고 재편되었다. 방이 여섯 개나 되는 고전적인 아파트는 벌집처럼 모여 있는 원룸형 아파트로 탈바꿈했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저임금 공장들은 작은 공간으로 나뉜 공장 건물이 되었다. 모든 동네에서 유행에 어긋나는 불완전한 건물들이 쇳덩이에 부서질 날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기존의 건물을 능가하는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그 건물들의 뼈대를 녹였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새로운 건물이 연달아 몸을 일으키며 이민자처럼 과거를 털어버렸다. 주소는 똑같았다. 결함 있는 사고방식도 똑같았다. 이 도시가 다른 곳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기는 여전히 뉴욕이었다.


제1구역 : ZONE ONE | 콜슨 화이트헤드 저,김승욱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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