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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jung-mi kim "Spring"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들을 그림자 속에서 꺼내오는 작업이다. 그게 바로 글쓰기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아니라 '그곳' 자체다. 그것이 글쓰기의 장소이며 목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자지

장소에 대한 기억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거나, 봤던 풍경이 웅장했었구나. 느낄때가 있다. 미국의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들판이였는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창의 배경 정도라고 생각하는 광활한 들판과 언덕들. 영화 찍으러 가서 정신없이 둘러보고 일한 장소였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넓은 이상의 풍경이였다. 여기가 매우 좁다. 그런 느낌이 든다. 2008년 3월 

'나의 투쟁' 중에서

"....엄청난 양의 박테리아가 신체 내부에서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때는 이미 늦는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 박테리아들은 완강한 저항을 경험했을 터인데, 지금은 이들을 멈추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 박테리아 무리는 어두침침하고 습기 가득한 몸속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간다. 하버스 관, 리베르퀸 선, 랑게르한스 섬, 콩팥의 사구체 주머니, 척수의 흉부 핵 후벽, 중뇌의 검은 물질. 이들은 이미 박동을 멈추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심장에 다다른다. 움직임을 멈춘 심장은 일꾼들이 서둘러 지나간 공사장처럼 썰렁하다. 어둠이 깔린 숲을 향해 헤드라이트를 켠 채 멈추어 서 있는 트럭들, 텅 비어 있는 황량한 막사들, 사람을 가득 싣고 산꼭대기로 오르다 멈춰버린 케이블카처럼 보인다.  생명이 몸을 빠져나간 그 순간, 몸은 죽음의 세계에 속하게 된다. 램프와 슈트케이스, 담요와 문손잡이, 그리고 창문들. 흙과 수렁. 강과 산. 구름과 하늘.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이렇게 우리는 생명을 머금지 않은, 죽음의 세계에 속하는 온갖 물건과 현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살아오지 않았던가..........."

'나의 투쟁'

버릇과 습관은 무섭다. 역마살. 집에 있는게 괴롭다. 글쓰기 할 때의 버릇. 남의 책 번갈아 읽기.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나의 투쟁"이 요즘 핫한 모양이다. 맛뵈기용 책이 왔길래 읽고서 구매할 듯. Posted by Jangseop Lee on  2016년 1월 16일 토요일